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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화 확정고시] 황교안 ‘PPT’로 날고, 이종걸 ‘침낭 쪽잠’…깊어지는 惡緣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 얄궂다. 고교 동창(경기고 72회)이라는 공통분모는 악연(惡緣)의 전주곡이었던 걸까. 황교안 국무총리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애초 지향점이 달랐기에 한 국가의 총리ㆍ제1야당 원내사령탑이 된 둘의 조우는 거듭된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강행한 3일 두 사람의 엇갈린 행보는 더 극명하게 대비됐다.

황교안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께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화 총대를 확실하게 멨다.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위한 15분간의 발표에서 황 총리는 정부 공직자로선 이례적으로 파워포인트(PPT)를 활용한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취했다.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의 생전 프레젠테이션엔 비할 게 아니지만, 한국의 공직자로선 무리없는 시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틈 날 때마다 강조해 온 걸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역사교과서가 무엇이 문제인지, 왜 국정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말하겠다”고 했다.

연단 옆엔 60인치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고, 황 총리가 발표문을 읽는 것에 맞춰 관련 자료가 화면에 떴다. 말하는 속도는 노년층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적절했다. “북한에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의미를 왜곡 전달하고 있다”, “현행 검정 발행제도는 실패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등 국정화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지점에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황 총리는 특히 박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진행한 국회 시정연설의 문장을 그대로 따와 주목을 끌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친일ㆍ독재 미화를 한다는 우려가 있는 것과 관련, “정부도 그러한 역사왜곡 시도들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정책적 ‘복심(腹心)’임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고, 국정화 정국을 거치며 황 총리의 위상도 공고해진 걸로 분석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황 총리의 이날 발표에 대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는 걸 속시원하게 지켜봤고, 총리 수고 많았다”며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충정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 총리의 이런 행보에 이 원내대표는 상대적으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전날부터 국정화 확정고시에 반발, 국회에서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걸 지휘하고 있다. 그는 이 때문에 로텐터홀의 바닥에서 침낭에 의지한 채 쪽잠<사진 오른쪽>을 자야 했다.

그는 이날 의원총회에선 확정고시가 강행된다면 국회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저희는 국회에서 일하고 싶다. 민생을 위해 싸우고 싶다”며 “그런데 불가피하게 중단시킬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정오께엔 서울 광화문에서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이 연 국정교과서 반대 기자회견에도 참석하는 등 장외투쟁에도 나서고 있다. 정부 주도의 확정고시가 현실화한 만큼 이를 되돌릴 묘안이 없기에 여론전에 의존하는 처지다.

둘의 역학관계는 국정화 정국 전까지만 해도 이 원내대표가 공세적 입장이었다. 황 총리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지난 5월, 이 원내대표는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총리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아바타’라고 하는 분을 지명했다”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최근 대정부질문에선 황 총리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허용과 관련한 발언을 하자, 이 원내대표는 “총리가 ‘일본이 우리와 협의해서 필요성이 인정되면 자위대의 입국을 허용한다’, ‘한반도 진출을 허용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공식화 했다”며 “정부 최고 책임자의 반응이 반역사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황 총리와 이 원내대표는 이미 고교시절부터 다른 길을 걸었다. 황 총리가 학생회 대신 설치된 학도호국단의 연대장을 했고, 이 원내대표는 1학년 때 유신선포 1주년을 맞아 반(反) 유신 유인물을 뿌린 걸로 알려졌다. 이후 경력도 황 총리는 ‘공안검사’, 이 원내대표는 ‘인권 변호사’로 판이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6월 19일, 총리 취임 인사차 국회를 찾은 황 총리와 ‘대좌’한 적이 있다. 둘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는 이 때부터 예견됐다. 이 원내대표는 “저와 총리는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확대하는 데 같이 함께 하는 동창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에 황 총리는 “두 과제가 정말 중요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그동안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어떤 부분을 더 많이, 더 빨리 할 것이냐 이 부분에 관해서 견해가 다른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국정화 정국 이후에도 둘의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듯하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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