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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대통령 중 功過 가장 확실했던 문민 대통령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취임 초 90%를 넘어섰던 지지율이 임기말 8%로….

22일 88세의 일기로 영면에 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5년간 국민들의 지지율은 김 전 대통령과 문민정부에 대한 평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공과 과가 가장 확실하게 나뉘는 대통령이었다.

1980년대 말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를 이끈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 김종필 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토대로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강도 높은 변화와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임기 말 6ㆍ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본인은 물론 대한민국에도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치적 중 하나는 ‘역사 바로세우기’였다. 


김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고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법 제정과 검찰 재수사 명령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 핵심 관련자들을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세웠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비상식이 상식처럼 여겨지던 상황에서 국민의 동의 없이 헌정을 문란케 하는 행위는 성공 여부를 떠나 처벌해야 한다는 정의를 세운 순간이었다.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8월15일 중앙돔 해체를 시작으로 이듬해 11월 마무리된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도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온갖 정치적 이유와 함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전ㆍ이전 복원하자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족 자존심과 정기 회복 차원에서 조선총독부 철거를 밀어 붙였다.

노태우 정부 때 부활의 발판이 마련된 지방자치 시행도 빼놓을 수 없는 정치적 업적이다. 시기상조론 등 우려와 여당인 민자당 내 반대 기류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은 당 총재 시절 약속대로 전면 시행을 추진해 34년만에 지방자치를 부활시켰다.

30여년간의 군사정권에 기생해 파생된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은 재임 중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은 훗날 하나회 척결에 대해 “참모들도 전부 놀라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 때 군 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국회도 지금처럼 성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5년 치적 중 이것 하나만도 굉장한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20여년 만에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까지 발동하며 전격 단행한 금융실명제 역시 한국 사회의 경제민주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혁명적 조치였다.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1992년 국내총생산(GDP)의 29.1%로 전체 경제 규모의 3분의 1에 달하던 지하경제 규모는 1993년 도입 이후 1년만에 5%포인트나 줄어들었으며 금융거래와 과세의 투명성을 높이는 발판이 됐다.


그러나 1997년 IMF 사태는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모든 업적을 가리는 커다란 오점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1996년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 불과 1년 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550억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 받으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국민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OECD 회원국이라는 국민들의 자존심은 크게 손상 받았고 곧바로 이어진 대기업 부도와 금융권 붕괴, 대규모 실업으로 대한민국은 경제는 물론, 정치ㆍ사회ㆍ문화 등 전 분야에서 한동안 암흑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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