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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1927~2015]“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화려한 어록, 드라마틱한 삶
YS의 말…말…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일본의 버르장머리 고쳐 놓겠다”
“굶으면 죽는것은 확실하다”



22일 새벽 영면에 든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산 증인으로 영욕의 삶을 살다 간 정치인이다. 그가 걸어온 정치 인생은 그가 남긴 화려한 어록만큼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했다.

유신정권과 신군부 독재 시대, 민주화 투사로 각인된 이미지에서부터 1990년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결단 이후 야합한 변절자라는 비판까지 그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었다. 주위의 반대를 뚫고 재임 기간 중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해 경복궁 복원을 추진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진은 재임시절 청와대 관저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 [사진=헤럴드경제 DB]

1979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면서 외친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 “나는 의회 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며 국민과 더불어 떳떳이 가게 됐으니 여한이 없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은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의 뿌리를 내리는 씨앗이 됐다.

1979년 신민당 총재 재선 직후 그는 “대도무문(大道無門), 정직하게 나가면 문은 열립니다.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잠시 통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정직이 이깁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지녀야 할 도리, 정도에 거침이 없다는 뜻인 대도무문은 이후 그의 평생의 좌우명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최장 단식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1983년 5월 가택연금된 후 23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는 병원에서도 단식을 계속했다. 이를 통해 가택연금 해제를 얻어냈다. 이 단식은 추후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가 됐고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평소 산행을 즐겼던 그는 1987년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산행 도중에 많은 낙오자도 있었다. 민주화도 이와 같다. 민주화의 길은 그만큼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민주화 산행에 있어서 최종 고지의 200m 전방에 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YS는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이후 1990년 YS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당시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결행했다. 그는 이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1993년 2월 32년간의 군정에 종지부를 찍고 문민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다”고 감격해 했다.

그러면서 “신한국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고 국민에게 외쳤다. 이후 고강도 개혁 작업이 이어졌다. 부패 척결을 위해 1993년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고 12ㆍ12 쿠데타를 주도하고 군을 장악해 온 하나회도 숙청했다.

대통령 취임 첫 국무회의에서는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며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공개했다.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받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요즈음 개혁을 하다 보니 환부 하나를 찾아내 도려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32년의 권위주의 시대가 만든 ‘한국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 때는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참담한 소회를 밝혔다.

취임 초 지지율은 90%까지 올랐다. 그러나 임기 말에 터진 외환위기와 친인척 비리 등으로 국민은 차츰 그를 외면했다. 그는 아들 현철씨의 비리 사건과 관련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퇴임식에서는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고 술회했다.

YS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날선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DJ에게 ‘독재자’라고 비난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해 “참으로 무능하고, 무지하고, 대책 없는 정권”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독재자의 딸’‘칠푼이’라는 가시돋힌 말을 자주했다.

최상현 기자/sr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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