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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1927~2015]大道無門 앞에서…여야 모두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다
“정도를 걷는다면 거칠게 없다”
마지막 남긴글씨는 통합과 화합
여전히 이전투구 정치권에 경종


‘대도무문(大道無門)’ 앞에 여야는 모두 고개를 숙였다. 정도(正道)를 걷는다면 거칠 게 없다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영정 앞에 여야는 고개를 떨궜다.

김 전 대통령의 인생사는 한국 민주화의 역사다. 향년 88세. 그를 비롯한 민주화 1세대는 이 땅에 민주화를 열망하며 인생을 내던졌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그 피와 땀으로 이뤄낸 과실이지만 여전히 반목을 거듭하는 오늘날 정치는 민주주의를 꽃피우지 못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22일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김 전 대통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씨, ‘통합과 화합’도 절차적 민주화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를 이뤄내 달라는 절규다.

여야 모두 김 전 대통령 앞에 고개를 숙인 것도 부끄러움과 미안함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여의도에 울린 경종, 마지막 당부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빈소에는 오늘(23일)도 여야 주요 정치인의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빈소에서 조우했다. 문 대표는 “이 땅에 민주화 역사를 만들다시피 하셨는데,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정치철학을 저희가 되새겨야 할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대표도 김 전 대통령의 거리 투쟁 일화 등을 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지켜보던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는 “이렇게 찾아주시니까, 정치적으론 여권이나 야권이지만 이 자리만큼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너무 보기가 좋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흔적은 여야를 구별하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그가 발탁하고 그와 인연을 맺은 정치인이 여야를 움직이고 있다.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거쳐온 그의 정치사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정치적 아버지”라며 상주를 자처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22일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이 날 정치에 입문하게 하셨다”며 “담대한 용기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도 붉어졌다.

문 대표도 부산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 당시 김 전 대통령을 여러번 함께 봤다”고 했다. 김 대표와 당내 계파에서 대척점에 있는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김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여야, 계파를 아우르는 공통분모다.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이들 모두 과거를, 고인의 의미를 곱씹었다.

김현철 씨는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사실상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2013년 입원할 당시 말을 못하면서도 필담 식으로 남긴 글이다. 붓글씨로 쓴 ‘통합(統合)’과 ‘화합(和合)’이다. 현철 씨는 “무슨 의미인지 묻자 ‘우리가 필요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로 필담도 나누지 못했다. 사실상 김 전 대통령이 이 사회에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통합과 화합의 정치는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23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엔 정부 대표 분향소가 설치됐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 여야 정치인 모두 만감이 교차한 듯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고인을 향해 묵념했다. 감기몸살로 불참한 문 대표는 주승용 최고위원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 통합과 화합의 뜻을 받들겠다”고 추모했다. 김 새누리당 대표 역시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과 화합’을 언급하며 “민주화 최대 공로자이자 문민개혁의 영웅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묵념을 올린다”고 했다.

고인을 추모하고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면서도 여야는 미묘한 입장 차를 감추지 않았다. 야당은 “독재와 맞섰던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면서도 독재를 찬양하는, 이율배반의 정치를 보인다”며 여당을 겨냥했고 여당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선진화를 완성하도록 하겠다. 선진화를 위한 청년일자리 창출 노동개혁 법안을 비롯, 민생현안이 쌓여 있다”고 야당을 압박했다.

통합을 외치면서도 현실에선 날만 세우는 국회의 살풍경은 아직 그대로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대화와 타협, 통합의 민주주의, 1세대가 몸으로 민주화를 이뤄냈다면 이젠 말과 대화로 이뤄내야 할 민주주의다. 김 전 대통령이 한평생을 내던지며 여의도에 남긴 마지막 숙제다.

김상수ㆍ장필수ㆍ양영경 기자/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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