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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1927~2015]“정치 모르지만…제겐 국수 한그릇에 기뻐하던 칼국수대통령”
YS 쓰러지기 전 100만원 쾌척…단골 칼국수집 사장 이수자 씨

69년 가게 문연 이후 40년 단골
늘 ‘이집 국수가 제일 맛있다’ 자랑
靑영입 거절에도 해마다 연하장
2013년 겨울 병원신세 지기전 방문
‘내가 니 선물주는 기다’며 봉투
삼촌 같은 분 돌아가셔서 가슴 먹먹



“이렇게 비오는 날, 그 분은 ‘칼국수 한 그릇’ 생각하셨을 거예요.” 

서울 성북동 ‘국시집’ 사장 이수자 씨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특별한 인연으로 그의 떠남을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국시집’ 사장 이수자(64ㆍ여)씨다.

‘칼국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칼국수를 즐겼던 YS는 이 집의 유별난 단골이었다. 상도동계 핵심 ‘좌(左)형우ㆍ우(右)동영’ 중 김동영 전 장관이 YS에게 이 집을 소개한 걸로 알려진다. 이 씨의 어머니 이옥만 여사(작고)가 1969년 가게 문을 연 이후, YS는 40년간 발길 끊을 줄 몰랐다.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도 YS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들렀다고 한다. 

이 씨는 “항상 방문하시면 ‘야야, 요새 장사는 어떻노’ 하고 친근하게 안부를 물었다”며 “별관 쪽에서 식사를 한 뒤엔 꼭 본관으로 와서 손님하고 악수를 나눴다. 그러면서 ‘이 집 국수가 세계에서 제일 맛있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YS에게 이 국시집은 소중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경남고 동기, 배드민턴 동호회, 동네 아주머니 팬클럽 등과 자주 찾았다. 이 씨는 “‘느그들 실컷 묵으라’ 하면서 사람들에게 국수를 먹이셨다”며 “가끔 동기들에게는 ‘경남고 다닐 때 여학생들이 말도 못하게 쫓아 다녔데이’라는 장난 섞인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고 했다.

YS가 이 집에 애정을 가진 건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YS는 집에서 반죽하고 밀고 썰어서 만드는 칼국수를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표현했다. 재임 기간 중에는 이옥만 여사의 칼국수 맛을 청와대로 옮겨 가려는 노력도 했다. 이 여사는 “나는 여기서 내 식대로 할 테니, 거기(청와대)에서는 거기 식대로 하시라”며 영입을 거절했다고 한다. YS는 그 뜻을 이해하고 국시집을 찾아 칼국수 맛을 보는 방법을 택했다.

YS는 해마다 국시집에 연하장을 보냈다. 어느 해엔 연하장에 영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담았다. 이 씨는 “가족사진까지 보내는 걸 보면 우리 집이 편안하셨나 보다”라며 “우리 어머니한테는 꼭 살아계신 (자신의) 어머니 같다고 말하시더라”고 말했다. 이 씨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YS는 가게를 찾아와 “느그 엄마 참 생각난다. 느그 엄마가 나한테 (국수를) 맛있게 해주느라 애썼다”고 전하기도 했다.

YS가 이 집에 마지막으로 들른 건 2013년 겨울이다. 뇌졸중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YS는 측근을 통해 “미국에서 막내딸이 오는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고, 이 씨는 몇 가지 찬을 더 준비해 상을 냈다.

YS는 식사를 마친 뒤 음식값을 계산할 때 재킷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거기엔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이씨는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YS는 “니가 그동안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노. 내가 니 선물 주는 기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씨는 “40년 단골이었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며 “봉투를 내미시는데 왠지 의아스럽기도 하면서 짠한 마음도 들더라”고 기억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 씨는 YS가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인 병문안 가는 길에 YS를 보려 했다. 김기수 비서실장에게 “인사라도 좀 하고 갈까요”라고 했더니, 김 실장은 “지금 막 잠드셔서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이 씨는 “잠도 드실 수 있겠지만, 자존심이 강하셔서 흐트러진 모습을 가족 외엔 보이기 싫으셨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게 작년 여름의 일이다.

이 씨는 “큰 아버지나 삼촌 같으신 분이 돌아가셔서 가슴이 먹먹하다”며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사람들은 대통령을 어떻게 비하할지는 모르지만 제겐 칼국수 한 그릇에 기뻐하던 ‘칼국수 대통령’이셨다”고 했다.

양영경 기자/a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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