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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 신인류 '미각노마드' 리포트<4>대량소비시대, 우리는 골목으로 향한다]연남동 골목·열정도 골목…그 골목엔 특별한 게 있다
‘나만의 소비’ 원하는 차별화 욕구 충족
발품 팔더라도 맛있는 것, 특별한 것 선호
단순히 외식공간을 넘어 하나의 문화 창출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 쯤 머릿속을 채우는 ‘오늘 뭐 먹지’란 고민처럼, 저녁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것도 만만찮은 품이 든다. 뻔한 것은 싫고, 그렇다고 소중한 저녁을 아무렇게나 때우기는 아깝다. 번화가 어디쯤의 어느 역 몇 번 출구라는 약속 장소들은 점차 누군가 이름 붙인 ‘길’로 대체됐다. 가로수길이 그랬고, 경리단길이 그렇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길이 만들어 낸 트렌디(trendy)한 감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의 것을 소비한다. 

골목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이에 부응한 시장이 만들어낸 트렌드다. 최근 몇 년 새 젊은이들의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골목 트렌드는 올해도 계속된다. 단순히 먹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골목만의 감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서 골목의 의미는 진화 중이다. 사진은 연남동 골목(왼쪽)과 열정도 골목. 이상섭 기자/babtong@

같은 브랜드의 휴대폰을 쓰고,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옷을 입고, 사방에 흩어져 있는 같은 맛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시대. 차별화되고 싶은 욕망은 ‘나만을 위한 소비 공간’을 찾게 된다. 대형 유통채널에게 힘 없이 자리를 내줬던 골목에 사람들이 눈을 돌린 것은 ‘같은 것’에 대한 싫증, ‘나만의 것’에 대한 니즈(needs)의 결과다.

▶우리는 골목으로 간다=2월 초 목요일 저녁, 서울 용산 원효로 부근에 위치한 인쇄골목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하루의 회포를 풀기위해 동료들과 찾은 샐러리맨들부터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까지 무리 지은 그룹들은 골목으로 들어와 각자의 행선지로 뿔뿔히 흩어진다. 인쇄골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인쇄소들의 불이 꺼진 자리를 밝히며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의 공간이 되어준 것은 약 1년여 전부터 이 곳에 터를 내린 ‘열정도’다. 그리고 현재, 감자집, 치킨사우나, 철인28호, 판, 열정도고깃집, 아지트 등 6개의 매장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골목’으로 자리잡았다.

회사 동료들과 이 곳을 찾았다는 홍 모(여, 31) 씨는 “회사가 종로라서 가깝게는 경리단에 많이 갔었는데 이제는 경리단도 사람들이 많아져서 가기가 꺼려진다”며 “동료 중에 한 명이 이 근처에 살아서 추천해줘서 오게 됐다. 막상 찾아오니 골목 분위기가 경리단 못지 않다”고 했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용산 고가 옆 골목에 열정도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은 장사, 문화, 교육의 활동을 함께 하는 단체인 청년장사꾼이다. 청년장사꾼에게 원효로 인쇄소 골목은 단순히 외식을 위한 공간을 넘어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29)는 “삼각지 고가를 왔다갔다하면서 왜 재개발이 안 될까 생각하던 중에 부동산에 와 봤더니 공실도 많고 한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제일 처음에 시작할 때는 외식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뭘 재밌는 것을 해보자고 시작했고, 외식매장 뿐 아니라 장터도 열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골목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이에 부응한 시장이 만들어낸 트렌드다. 최근 몇 년 새 젊은이들의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골목 트렌드는 올해도 계속된다. 단순히 먹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골목만의 감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서 골목의 의미는 진화 중이다. 사진은 연남동 골목(왼쪽)과 열정도 골목.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골목이라는 트렌드가 생긴 지는 몇 해 전이지만 골목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외식 공간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번화가 주변이 아닌 지역 상권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미 유명세를 탄 연남동 골목, 용산의 열정도, 지난해부터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는 서울대 부근의 ‘샤로수길’ 등 끊임없이 골목이라는 공간을 주류로 발전시키는 것은 소비자다.

▶골목, 트렌드의 중심에 서다=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길이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 된 데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목표가 같아지면서다. 굳이 발품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것, 특별한 것을 찾는 소위 ‘미각 노마드족(族)’이 증가했고, 시장은 이 것에 부응하듯 브랜드화 된 길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번화가보다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비슷한 감성의 경험을 한 골목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들 골목의 특징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골목이 생겨나는 형태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몇 개의 매장들이 성업하면서 그 주변에 외식이나 해당 층이 좋아할 만한 매장들이 문을 여는 경우다”며 “또 하나는 골목이 협동 창업공간으로서 커뮤니티를 형성, 당초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새로운 상권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용산에 있는 홍석천 거리나 장진우 거리가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이제 골목은 그늘에만 있지 않다. 언젠가 골목의 자리를 차지했던 대형 유통업체들도 ‘골목’과 골목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영등포의 경방 타임스퀘어는 리뉴얼 오픈 당시 한남동의 유명 베이커리 ‘오월의 종’과 착한까페로 유명세를 탄 연남동의 ‘까페 리브레’를 유치했다. 모 대형 유통사의 러브콜도 거절했던 이들 두 가게를 위해 타임스퀘어 측은 기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경성방직 사무동을 내줬다. 얼룩말무늬 롤케익으로 인기를 모았던 장진우 거리의 까페 ‘프랭크’도 현대백화점을 비롯한 유명 백화점에 입점했다.

한 대형 쇼핑몰 관계자는 “골목은 쇼핑을 하는 주고객층이 원하는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작더라도 유명한 맛집이나 매장들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나만을 위한 소비’ 경향이 계속되는 한은 골목 맛집에 대한 니즈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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