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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연 듣다가 나도 모르게 울화병” 범죄피해자 상담원, ‘대리외상’ 심각
김태경 백석대 교수 연구 논문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 서울의 한 성범죄 피해자 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A(30ㆍ여)씨는 요즘 상담 후유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매일 데이트 강간, 직장 상사 성추행 등 피해자들의 사연을 듣고 위로하는 일을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과하게 소모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A씨 주변에는 ‘이제 감정이 무뎌졌다’는 동료도 있지만, 본인처럼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에까지 지장을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심리치료 등 각종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무자들이 심각한 정서적 소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김태경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범죄피해자 지원 관련 서비스 종사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리외상’을 앓고 있었다.

대리외상은 상담자가 간접ㆍ지속적으로 사건에 노출되면서 본인의 건강이나 심리 등 삶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일컫는다. 재난ㆍ사고ㆍ범죄피해와 같은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피해자를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발생한다.

김 교수와 연구팀은 강력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문 기관 30곳의 상근직 실무자들을 표적집단으로 삼고, 연구 참여 의사를 밝힌 1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이 지난 1년 동안 피해자를 지원한 평균 건수는 1인당 112.7건이었다.


한편 비교를 위해 범죄 문제와 관련없는 일반적인 상담원과 상담 업무와 아예 무관한 사무직 종사자 각각 24명, 43명에 대해서도 같은 조사를 벌였다.

연구팀이 설문조사 결과를 각종 척도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해자 지원 실무자 집단이 다른 비교집단에 비해 10~30% 가량 높은 대리외상을 경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자기안전, 자기통제, 타인통제 등 대리외상을 가늠할 수 있는 항목에서 이들 실무자 집단이 3점에서 6점 정도 더 높은 점수가 측정됐다.

또 강력범죄 피해자지원 실무자인 경우 남녀 양쪽 집단에서 간접 외상으로 인한 자기신뢰감 변형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비교집단에서는 여성에게 주로 신뢰감 변형이 나타났다. 비교집단 남성들은 이 같은 심리적 변형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표적집단의 급여 수준을 비교한 결과에서는 수입이 증가한다고 해서 대리외상 정도가 특별히 감소되지 않았다. 반면 주변 업무환경이나 개인의 내적 요인은 대리외상을 예방하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범죄피해 서비스 종사자들의 대리외상 관련 스트레스가 갈수록 누적되면서 이직이 잦아지고,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태경 교수는 “이들 실무자들의 대리외상은 개인의 취약성이라고 간과해도 될 만큼 가벼운 문제가 결코 아니고 일종의 범죄의 2차 피해로 간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 선진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대리외상이 실무자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다양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우리도 업무환경ㆍ복리후생 개선 등 실질적 지원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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