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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풀기 동참해야는데, 유동성함정 걱정되네”…고민깊어지는 韓銀
[헤럴드경제=정순식ㆍ강승연 기자] ‘중앙은행은 경기 진작을 위해 무작정 돈을 풀어대는 헬리콥터여야 하는가?’

글로벌 경기 불황에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최근 한은의 고민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한국은행이 2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은 반대로 더욱 고조되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경신한 데 이어, 글로벌 IB들 또한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가 당겨질 것으로 앞다퉈 전망하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도 하성근 금통위원이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면서 이런 전망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비례해 이주열 한은 총재의 고민 또한 깊어가고 있다.

돈을 풀어대는 통화정책 만으로는 경기 부양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한은은 우려하고 있다.

실제 사상 최저금리에도 불구하고 단기 부동자금은 930조를 돌파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풀린 돈이 갈 곳을 잃고 정처없이 떠도는 ‘유동성 함정’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금리 더 내려라! 등 떠밀리는 한은= 한은이 전날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5%로 8개월째 동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글로벌 IB들은 즉각적으로 금리 인하 시기가 당겨질 것이란 분석 보고서를 쏟아냈다.

노무라의 권영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6월로 예상했던 금리인하 시점을 3월로 앞당긴다고 했다.

노무라는 한 발 더 나아가 한은이 3월 금리인하에 이어 경제성장 지원을 위해 10월에 또 한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그룹의 장재철 이코노미스트도 보고서에서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토대로 “한은이 3월 금리를 내려도 놀랍지 않다”고 했다. 씨티그룹은 한은이 2분기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이 밖에 SEB와 바클레이즈, ANZ은행그룹, BNP파리바 등도 한은이 3월에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가 전망치를 집계한 애널리스트 23명 중 10명이 올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채권 시장 또한 금리 인하에 베팅하고 있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 보다 0.035%포인트 하락한 1.445%로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하성금 금통위원도 이날 금통위에서 소수의견을 통해 금리 인하에 대한 소수의견을 내는 등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은의 속내는 복잡하다. 돈을 푸는 통화정책 만으로 최근의 저성장, 저물가 기조를 가져온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주열 총재는 그래서 이날 금리 동결 이후 “대외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기준 금리 조정을 신중히 해야 한다”며 “우리는 실질금리 수준이나 통화증가율, 유동성 상황 등을 볼 때 현재 정책금리가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경제 상황이 불확실해서 기업은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고 가계는 소득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금리를 내려 차입비용이 낮아진다고 해서 투자나 소비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은의 금리인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단기 부동자금만 늘어나는 유동성 함정 우려 고조= 금리인하를 망설이는 한은의 본질적 고민은 다름 아닌 ‘유동성 함정‘이다.

이미 금융 시장에서는 풀린 돈이 정처 없이 떠도는 단기 부동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 부동자금은 지난해 말 사상 처음으로 93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약 931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무려 17.2%나 증가한 것으로, 연간 증가율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세부적으로는 현금 76조3000억원, 요구불 예금 181조9000억원,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450조20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 58조2000억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43조8000억원, 양도성예금증서(CD) 21조1000억원, 환매조건부채권(RP) 8조4000억원 등이다.

저금리로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한 선순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현금성 자산으로만 머무르며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구사 중인 적극적 통화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으행은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동원하며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통화정책의 효과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이후 엔화는 도리어 강세를 보이고 주가가 폭락한 게 대표적 예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 유동성 함정에 진입해 있다”며 “한국도 유동성 함정 우려가 있기 때문에 통화완화 정책에 따른 실물지표 추이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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