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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나지 않은 3ㆍ1절]'소녀상 지킴이' 마지막밤...“끝이 아닌 시작”
한일협상안폐기 대학생대책위원회, 62일 노숙 농성 종료
노숙농성 동행 취재...영하 추위 속 밤샘 “끝이 아닌 시작”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3ㆍ1절을 하루 앞둔 지난 29일 늦은밤. 3월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영하의 추위는 가실 줄 몰랐다.

오후 10시께 본지 기자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 옆 농성장에 도착했을 때 6명의 남ㆍ녀 대학생들은 담요를 덮은 채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영하의 칼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두꺼운 패딩점퍼를 껴입고 모자까지 눌러쓴 이들이었지만 얼굴엔 여유와 웃음이 감돌았다. 함께 밤을 지내기 위해 왔다는 기자에게도 “반가워요 언니. ‘아이스 호두과자’ 좀 드실래요?”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공식 노숙농성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이곳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학생들 역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평범한 20대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8일 발표된 한ㆍ일 위안부 협상 타결의 부당성을 알리고 소녀상의 이전ㆍ철거를 온 몸으로 저지하겠다는 결의 만은 굳건했다. 

한연지(22ㆍ여)씨는 “노숙농성에 나온 것은 부모님께선 모르신다. 이런 활동을 하면 취업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시기 때문이다”라며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뒷짐만 지고 바라볼 수 없어 농성에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97주년 3ㆍ1절을 앞둔 29일 밤은 대학생으로 구성된 ‘소녀상 지킴이’들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일협상안폐기대학생대책위원회가 중심이 된 노숙농성은 62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종료하게 됐다.

지난달 29일 밤새 휘몰아치는 맹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노숙 참가자들이 핫팩을 개봉하고 있다.

마지막날 밤은 본지 기자를 포함해 총 4명이 지켰다.

이날 봄방학을 맞아 학생들의 행동에 동참하기 위해 나왔다는 고등학교 지리교사 유모(39)씨. 

임신 6개월차의 부인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그는 “대학생 모두 누군가의 제자였을텐데 교사로서 대견하면서도 항상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었다”며 “나 같은 기성세대가 만든 문제를 어린 친구들이 나서서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3ㆍ1절이 된 오전 12시 10분께 4명의 노숙농성 참가자들은 각자 침낭을 꺼내 들었다. 누군가 기증했다는 온수매트 위에 펼쳐놓고 햇팩을 개봉해 침낭속에 무더기로 집어 넣었지만 추위를 완전히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얼굴로 몰아치는 바람에 코를 훌쩍이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노숙농성 참가자 김모(29)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낭마저 얼어버린다”며 “얼굴로 몰아치는 한기를 막기 위해 비닐을 덮고 자보기도 했지만 답답할뿐만 아니라 엊그제 내린 비로 비닐이 얼어붙어 사용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낯설로 열악한 환경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기자에게 한 시민이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매번 인근에 올때면 학생들에게 커피를 사주곤 한다는 박모(48)씨는 “문제가 있는걸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현재 17개월인 아들이 커서 지금 농성중인 대학생들처럼 훌륭하게 자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숙농성중인 학생들의 잠자리를 괴롭힌 것은 추위뿐만이 아니었다. 오전 2시 30분을 넘어서자 주변에 세워졌던 경찰버스 4대의 시동이 걸리며 소음과 함께 매연이 흘러나와 잠을 방해했다.

지난 6일간의 노숙농성 기간동안 소녀상 지킴이 대학생들은 매일 밤 시동걸린 경찰버스에서 나오는 소음과 매연에 힘들어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오전 5시가 되자 새벽녘 칼바람에 온수매트조차 전혀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와 함께 처음 노숙농성을 경험한 유씨 역시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덮고 있던 침낭 지퍼엔 하얀 서리가 맺혔고, 한숨을 쉬니 하얀 입김이 끝없이 나왔다.

이렇게 마지막 농성장의 밤은 흘러갔다.

마지막 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소녀상을 찾은 김생 평화나비네트워크 대표는 “3ㆍ1절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던 항쟁인데, 지금도 바뀐 게 없이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해 국민들이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이 문제가 밝혀지기 까지도 오래걸렸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사과를 받은 적도 없었으며, 이번 한일 합의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 위한 과정에서 있는 하나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은 개강 때문에 공식적으로 노숙농성을 종료하지만, 향후 1인 노숙농성 등을 통해 소녀상을 지켜나갈 방법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노숙농성 후 한 참가자는 “일제 강점기 암흑같은 시절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주권을 찾고 싶어서 독립을 외쳤던 날이 3ㆍ1절”이라며 “2016년의 3ㆍ1절도 우리나라의 주권을 찾는 3.1절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한ㆍ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정말 매국적이라는 것, 정말 굴욕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돌려놓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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