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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산 VS 도요타, 닮은 듯 다른 ‘4세 경영’…앞날은?
박정원 두산회장·아키오 도요타사장

■ 닮은점
53~54세 비슷한 나이에 수장으로
소문난 야구광에 인재중시 경영철학

■ 다른점
두산, 형제간 돌아가며 경영권 행사
도요타는 오너도 철저한 경쟁 거쳐야



두산그룹이 재계에서 처음으로 ‘4세 경영’ 체제를 출범한다.

박용만(61) 두산그룹 회장이 큰 조카인 박정원 (주)두산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함으로써 두산가(家)의 오너 4세 경영 시대가 열리게 됐다.

올해 54세인 박정원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고(故) 박두병 초대회장의 맏손자로, 박승직 창업주부터 따지면 두산가의 4세에 해당한다.

우리처럼 창업주 가족이 소유권과 경영권을 유지하는 기업이 많은 아시아 가족기업 중에서도 4세 경영을 하는 곳은 드물다. 일본에서는 도요타자동차가 4세 경영을 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손꼽힌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에 이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박정원 ㈜두산 회장이 야구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

박정원 ‘31년’, 아키오 ‘25년’=공교롭게도 두산과 도요타가 4세 경영을 시작했을때, 창업자 4세의 나이가 비슷했다. 박정원 회장은 올해 54세,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ㆍ60)는 사장에 오른 2009년 당시 53세였다.

그룹에 입사한 시기도 거의 같다. 박 회장은 1985년 두산산업(현 (주)두산 글로넷BU)에 입사했고, 아키오 사장은 1년 앞선 1984년 도요타차에 들어왔다. 입사 후 경영권을 승계받는 데 걸린 시간은 박 회장은 31년으로 아키오 사장(25년) 보다 오래 걸렸다.

하지만 도요타의 경영승계가 두산그룹과 다른 점은 오너일가 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 속에서 경쟁을 통해 생존한 오너 일가만이 사령탑을 물려 받는다. 실제 도요타는 창업 이후 11명의 CEO를 배출했는데, 이중 오너 일가 6명, 전문경영인 5명이었다.

도요타 창업가 일족은 1995년 도요타 아키오의 삼촌인 도요타 다츠로(達郞) 사장을 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조 후지오(張富士夫),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 사장 등 전문 경영진에게 경영을 맡겨왔다.

그러나 1937년 창사 이후 최대인 5조원이 넘는 적자로 위기를 맞이했던 2009년 도요타는 오너 경영 체제를 다시 도입했다.

2009년 창업자 4세인 도요다 아키오가 대표이사 사장의 자리에 오르면서 창업주 가문 출신의 CEO는 14년 만에 재등장했다.

아키오 사장은 도요타 사키치(豊田佐吉) 도요타그룹 창업주의 증손자이자, 도요타 쇼이치로(豊田章一郞)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아키오 사장은 미국 밥슨칼리지에서 MBA학위를 받고 투자은행(AG 벡카)에서 잠시 근무하다 1984년 도요타에 입사했다. 이후 2000년 이사에 발탁됐으며 2005년부터는 부사장을 맡아 정보사업과 조달 등의 분야를 담당해왔다.

도요타차의 지분 0.14%를 보유한 아키오의 주식 자산은 2억7000만 달러(한화 약 3260억원)로 평가된다. 도요타 일가의 주식 지분율은 2%에 불과하다.

반면 1896년 설립된 박승직상점에 연원을 둔 두산그룹은 박두병 창업 회장의 유지에 따라 형제가 3~4년씩 돌아가며 경영권을 승계해왔다. 박두병 창업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회장부터 시작해 박용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회장까지 차례로 경영권이 이어져왔다.

또 오너 일가가 그룹 지주사 (주)두산의 지분을 40% 넘게 가졌지만 고루 지분을 나눠 누구도 전권을 휘두르지 못한다.

오너 일가 4세 중 가장 연장자인 박정원 회장은 지주사 (주)두산의 최대주주(6.29%)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박 회장의 주식 지분평가액은 약 1018억원(지난달 15일 기준)에 이른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의 주식 3.65%, 박정원 회장의 친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4.19%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10월 열린 도쿄 국제모터쇼에서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등장한 아키오 사장

야구광 4세들의 ‘인재중시’ 경영철학=평소 야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키오 사장은 공식석상에서 경영상황을 곧잘 야구로 빗대 말한다.

2008년 당시 부사장이었던 아키오는 도요타차의 경영상황이 어려워지자, 당시 기자회견에서 “위기 상황은 야구 경기의 ‘7회말’과 같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2009년에도 “(현 세계 경기침체는) 야구에 비유하면 5회초 시작 전 같은 상태”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도쿄 국제모터쇼에서 4세대 신형 ‘프리우스’(하이브리드자동차)를 선보이면서, 일본의 ‘야구천재’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아키오 사장은 “타석에 서지 않고는 타점도, 안타도 없다”며 신형 프리우스를 두고 “타격 폼을 바꾸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두 손을 번쩍 들며 “용기를 갖고 도전하고, 앞으로도 계속 타석에 서고 싶다”고 외쳤다. 스즈키 이치로는 타격폼을 바꿔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쓴 야구선수로 평가받는다.

아키오의 이같은 행동에는 타격폼을 바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이치로처럼, 많은 것을 새롭게 바꾼 신형 프리우스로 미국 등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박정원 회장은 소문난 ‘야구광’이다. 2009년 두산건설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두산 베어스의 구단주도 맡아 야구단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고려대 재학시설 야구 동아리에서 2년 동안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박 회장은 시즌 중 수차례 야구장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하며 선수단을 챙기기도 했다.

특히 두산베어스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는 그의 인재 중시 경영철학이 반영돼 있다는 평이다. 두산베어스는 역량 있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육성시키는 ‘화수분 야구’로 유명하다.

인재를 중시하는 것은 아키오 사장과 일맥상통한다. 아키오는 2009년 사장에 오른 이후 생산량 확대만을 외친 60대의 경영진을 퇴임시키고, 생산확대로 인한 품질 문제를 제기하다 좌천한 50대 임원들을 재기용했다.

두산ㆍ도요타 4세의 앞날은=평소 과묵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진 박정원 회장은 사원에서부터 시작해 지난 30년간 두산그룹의 변화와 성장에 기여해왔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5년 두산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현장을 두루 거쳤다. 1999년 (주)두산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해 취임 이듬해인 2000년에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린 바 있다. 2007년 (주)두산 부회장, 2012년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은 이후에는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등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다.

하지만 두산그룹을 넘겨받게 될 박정원 회장 앞에는 여러 가지 만만치 않은 과제가 쌓여 있다. 우선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최근 몇 년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그룹의 주력 기업들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일이 시급하다.특히 지난해 두산그룹이 구조조정 대상에 1~2년 된 신입사원까지 포함시켜 국민적 비판을 받은 것 역시 박 회장이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다.2014년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복귀한 도요타차의 아키오 사장에게도 친환경차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도약이라는 과제가 있다.

그는 올해 새해 포부로 “뿌리 다지기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경기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나이테 경영(오래 가려면 천천히 가라)’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사태(Diesel crisis) 이후 각국이 환경규제를 강화하면서 도요타는 현재 친환경차를 경영상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10월 중장기 성장목표인 ‘도요타 환경 챌린지 2050’을 발표해 여러 환경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50년 판매되는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에 대비 90% 줄이고, 2020년 연료전지자동차(FCV) 글로벌 판매대수를 연간 3만대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오너경영은 ‘책임경영’이라는 장점이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계획을 세우고 신속한 의사결정,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다. 이런 오너 경영으로 성공한 다국적기업으로는 로레알과 미쉐린 등이 꼽힌다. 하지만 오너경영은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경영을 잘 하지 못했을 경우 감시하고 견제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두산과 도요타의 4세 경영인들이 이런 오너경영의 장점은 살리면서 투명경영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민상식 기자/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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