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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묵화가 김호석이 본 이 시대의 큰 스님…붓끝을 혀로 빨아 눈썹 하나도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모든 벽은 문이다’ 제목부터 선(禪)적이다. 우리 의식속에 있는 문과 벽의 대립구조를 깨뜨린다. 문은 열리면 외부와 소통하는 통로이고, 닫히면 벽이다. 벽이 문이고, 문이 벽이다. 문과 벽은 같이 있는 것이다.

인물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수묵화가 김호석이 이 시대 큰 스님의 진영 작업 과정을 묶어 ‘모든 벽은 문이다’(도서출판 선)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이 책에는 성철스님, 관응스님, 법정스님, 광덕스님, 일타스님, 지관스님, 만해스님, 지효스님, 통광스님, 청화스님, 전강스님, 송담스님, 명성스님, 초의스님 등 열네 분의 대선사와 만남, 진영작업 과정의 고뇌 등 또 다른 구도자(?)로서의 고통과 안타까움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는 성철 스님을 주제로 한 수묵인물화 전시를 준비하면서 손에 잡 힐 듯 잡히지 않는 막막함에 대해, “집착하면 할수록 얼굴로는 오지 않고 말씀으로만 오는 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분이 영상이 잡힌단 말인가. 번번이 좌절하고 뉘우치는 생각이란, 스님의 영정과 구도 행적을 내 붓에 가두어 보겠다고 덤빈 것이 잘못이었다는 사실뿐, 아! 그럴때의 막막함이란(중략)”이란 말로 붓을 잡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지 토로한다.

작가에게 수초(守初-처음의 뜻을 지키라는 의미)라는 호를 지어준 직지사 관응스님의 진영 작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인물화 기법에 대해 들려준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인물화에서 대상의 명암을 제거하고 입체를 평면으로 압착해 가는 과정은 대상과 주체의 ‘시간성’과 ‘거리지우기’를 수행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일방향의 ‘바라보기’와 ‘감흥하기’가 아니라 쌍방향으로 말하고 바라보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평면성의 비밀이다”라고 적었다.

인물의 겉모습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정신, 인품까지 담아야 하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전통과 함께, 작업자 자신에 대한 검증작업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그는 책에서 보여준다.

평론가들로부터 작가의 최고의 득의작이라 평가 받았던 관응스님의 진영은 이를 부탁한 측에서 몇가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다시 그려달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를 오히려 불합격의 수치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1년여간 작가의 혼이 배어있는 작품이 되돌아온 것을 작가를 생각한 분들의 다른 배려방식이었다고 고마워한다. 

내려놓다,60X88cm, 종이에 수묵, 2015
바가지, 쌀,깨어짐, 실로꿰맴, 채움과 비움. 청화스님은 쌀 두 되로 석달을 살았다.
그러면서 속박의 자유와 청빈의 풍요를 누렸다.


법정스님 진영작업을 하면서 얼굴 모습을 약간 숙이는 자세로 설정한 이유도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스님과 스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상호 마음의 눈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자 해서이다. 나는 스님의 진영 앞에 참배객이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둘 사이에 교감을 형성할 수 있는 시선의 각도와 교차점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러면서 몸과 얼굴의 각도를 약간 틀어놓아 최소한의 정신적 긴장만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적고 있다. 인물화작업에 작가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여준다.

관음, 188.5X94.5cm,종이에 수묵채색,2012
풍경은 고양이를 보는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고 있다.


작가는 또 일반인보다 숱이 적고 길이도 짧은 법정스님의 눈썹을 어떻게 표현할까 특히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 붓털의 숱이 2~3개인 쥐수염과 노루겨드랑이 그리고 토끼 등줄기와 고양이 등줄기 털로 만든 붓을 사용, 붓에 먹을 묻히고 붓대를 아래로 한 채 붓끝을 혀로 빨아서 지체하지 않고 바로 선을 그어 눈썹을 하나하나 심듯이 그렸다”고 밝히면서, “이는 물과 먹의 농도가 붓속에서 섞이는 찰나를 이용한 표현방식으로 물과 먹이 섞이는 과정과 붓의 기울기와 붓이 머물고 있다가 흘러내리는 속도 그리고 농도, 시간까지 고려한 방식이다” 라고 설명하면서 주변에서는 ‘혀가 멍들었다’고 표현한다고 했다.

작가는 큰스님의 진영작업과 함께 자신의 예술관도 드러낸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 다만 타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짐작할 뿐이다”며 “모든 것은 타자성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며, 자기 아닌 것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이 부정성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다”는 칸트적 사유도 보여준다.

단맛 140X73cm, 종이에 수묵,2015
관응스님과의 대화에 열중한 사이 차가 식어버렸다. 차에서는 아무맛도 나지 느껴지지 않았다. 스님께서는 “황악산 중턱에 사는 장수말벌이 와서 찻잔속에 있는 차의 단맛과 맑은 색을 다 빨아먹고 표표히 날아갔다”고 하셨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예술작업을 고양이가 풍경을 바라보며 물고기를 탐하는 ‘관음’ 이란 작품을 끌어와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고양이는 몸을 S자로 배배꼬면서 형과 색을 탐하고 있다 ‘저 물고기를 잡아 먹어 보았으면---’하는 마음이다. 고양이와 공중에 매달린 풍경과의 거리는 점프를 해서 닿을 수 없는 거리임에도 말이다. 여기서 나는 광대무변한 것을 남겨 놓고자 공간을 비웠다. 그것이 바로 반대 시선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는 우리가 보는 순간 풍자를 느낄 수 있다. 똑같이 그림의 형상에 빠져 웃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풍자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며 의미로는 설명될 수 없는 해학과 풍자의 예술세계를 나타낸다.
그는 또 책 곳곳에서 의뢰인과 작품을 보는 시각차로 인해 여러차례 진영을 다시 그린 사례를 소개하면서도 자신의 분신인 작품에 대해 진한 애정을 표시했다. 아울러 혼신의 노력 끝에 탄생한 진영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엔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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