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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한번 나빠지면 못돌아가…재정 지출로 단기반등 이뤄야” [피플&스토리-김유찬 조세재정연구원장]
재정과 통화정책 병행한다면
민간투자 위축시킬 우려 없어
나랏빚 상대적…한국 건전성 지나친 우려
국채 투자 자국인 90%, ‘위험도’ 상쇄
상승 기대 무리한 대출이 집값 올려
실거주 1주택자도 보유세 강화해야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조세재정연구원 아태재정협력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증세를 강조하면서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인상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실수요와 투기를 구분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그 근거였다. 박해묵 기자

대담 : 이해준 정책부 선임기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확장재정’ 한 단어로 요약된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통해 고루 잘사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국정철학에 이러한 이념이 녹아있다. 경제학 사상으로는 뉴케인지언(새 케인스학파)에 가깝다.

학계로 눈을 돌려보면 국내서 이처럼 확장재정을 주장하는 인물이 드물다. 우리나라 주류 경제학자들은 주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정권 말기를 향해가고 있는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국내 대표 확장재정론자이자 증세론자인 김유찬(63) 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이끌고 있는 조세재정연구원은 국가재정과 조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국책연구기관이다. 정책 현안을 학술적으로 연구해 논리적인 근거를 기획재정부와 정부에 제공한다.

문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답게 그는 인터뷰 내내 일관된 어조로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출을 계속 확대하면서 필요한 재원은 증세를 통해 조달해야 한다는 게 주된 논리였다. 김 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세제 관련 공약을 입안한 바 있다.

▶확장재정, 유럽식 재정위기 피하는 길=인터뷰석에 앉자마자 그에게 확장재정이 왜 필요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역사적 문맥을 짚으며 변화된 경제 패러다임을 역설했다. 김 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통화정책 완화를 통해 소비·투자를 활성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대출기회도 담보능력을 갖춘 부자들에게 집중되고 결과적으로 주식, 부동산에만 돈을 넣어 양극화가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출확대에 나서야 경제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그런 방향으로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라며 “재정과 통화정책을 병행한다면 민간투자를 위축시킬 우려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사례로 들며 재정이 제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당시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아일랜드, 포르투갈로 전염된 1단계를 지나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퍼진 바 있다. 김 원장은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3국에 돈을 빌려준 곳은 주로 독일, 프랑스 등의 금융기관이었다”며 “이들이 대출 회수에 나서자 그리스 등 국가는 긴축재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했다”고 전했다.

특히 경제위기 때 더 적극적으로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근거로 이력효과를 제시했다. 저성장이 몇 년 계속되면 경제가 회복돼도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김 원장은 “경제가 한 번 나빠지면 기존 성장경로로 돌아가지 못한다”며 “재정지출을 통해 단기간 내 경기 반등을 이뤄낸 나라는 향후 세금을 더 거둘 여력이 생긴다. 경제위기와 재정적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위험 국가부채 수준은 상대적인 개념…과도한 우려 자제해야=확장재정에는 항상 건전성 우려가 따라붙는다. 2017년 당시 36.0%에 불과했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올해 43.9%, 오는 2024년 58.0%로 급증하자 재정건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우리나라가 건전성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부채는 항상 상대적으로 비교해야 한다”며 “한국이 홀로 빚을 늘리면 문제겠지만 코로나19 위기로 다른 나라들도 막대한 돈을 빌리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도 재정을 긴축적으로 쓰고 있다고 봤다.

김 원장은 “유럽은 올해 GDP의 20%에 해당하는 돈을 정부 지출로 썼지만 우리는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2~3%밖에 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자율이 낮아 돈을 빌려 쓸 때 이자 부담도 없다고 부연했다.

일각에서 유럽 재정위기를 언급하며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김 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채권 대부분을 국내서 소화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평균 국채의 35%를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며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 등 유럽국가의 경우 그 비율이 더 높아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일본과 한국은 국채의 자국 투자가 약 90%에 이르는 등 매우 높다”며 “국가가 이자를 지불해도 자국민의 이자소득으로 흘러가니 위험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전체 국가채무 중 40%가 금융성 채무로 그 비중이 다른나라보다 높아 부채의 질도 양호하다고 했다.

▶1주택자, 투기-실수요 구분 어려워…보유세 높여야=인터뷰는 자연스레 증세 이슈로 넘어갔다. 김 원장은 지출 축소보다 증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증세를 주장한 세목은 바로 소득세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연 3000만원대인데 소득세 최고세율 부과 대상은 연봉 5억원 이상인 근로자”라며 “유럽은 평균 소득과 소득세 최고세율 시작 구간 간 격차가 2~4배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10배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최고세율을 내는 계층이 극소수라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과표구간 하향 조정을 통해 중산층 증세를 단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연소득 8000만원이라면 소득 상위 10~15%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각종 공제를 통해 세금을 10%도 안 내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해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은 실효세율을 높이기 위한 첫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적 반발 때문에 당장은 어렵겠지만 초고소득층부터 시작된 증세는 중산층까지 확산될 필요가 있고 그래야만 고령화시대에 최소한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득세 과세표준 10억원(연소득 13억원) 초과 구간를 신설해 최고세율을 현 42%에서 45%로 올리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다만 면세자 비율을 줄이는 데 대해선 반대했다. 근로자 10명 중 4명은 면세자에 해당돼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다.

김 원장은 “면세자들은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계층”이라며 “소득이 워낙 적어 세금을 걷어봐야 세수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해선 보유세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김 원장은 “다주택자면 투기고 1주택자면 필요에 의한 실수요라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며 “1주택이라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무리한 대출을 통해 사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꾸준하게 늘리면서 보유세를 유지·강화한다면 부동산 가격은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를 끝날 때쯤 그가 확장재정을 주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김 원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세를 전공했기 때문에 재정을 연구한 학자와 달리 과거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리=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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